저 높은곳을 향하여

가을속의 구병산

임호산 2015. 9. 14. 14:47

어제는 비가 내렸는데 오늘 아침 날씨는 청명한 가을 하늘이 더 높게만 보인다.

산행을 가는날이면 날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하다보니 새벽에 일어나면

으레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등산을 한다는건 나에겐 산길을 걷는거 말고도 새로운 풍경들과 계절마다 피여나는 야생화들을

만날수있다는 기다림과 설레임이 있기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기억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아서 되도록이면 많은 사물들을 카메라에 담아 오려면

그날의 날씨는 매우 중요하고 안전 산행과도 많은 연관이 지어진다.

밤새 울던 풀벌레 우는 소리는 사라지고 하늘가에 흰뭉게 구름들이 두둥실 흘러만 가는

풍경이 전형적인 초가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한다.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맑은 가을 공기를 깊숙히 마시고 내뿜기를 여러번 하면서 두손을 깍지끼고

가벼운 맨손 운동도 하면서 오늘의 일과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다육이와 선인장들이 날좀 봐달고 유혹을 한다.

바닥에 있는 키작은 선인장들은 쪼구리고 앉아서 어루 만져주고 화분대 높은곳에 있는 다육이들은

의자 위에 올라서서 한개 두개 보면서 아무 탈없이 크는지를 늘 점검을 하곤 한다.

그러기를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아뿔싸 일찍 일어나서 딴전을 부리다보니 시간이 벌써 6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갑자기 바뻐지기 시작한다.

내외동사무소엔 이미 여러명의 아심의 회원님들이 나와 있고 몇주만에 만나는 반가움을 가벼운 악수로

맞이하면서 인사를 나누어 본다.

언제나 늘 반가히 맞아주는 회장님과 여총무님의 인상은 언제 보아도 푸근하고 정겹게만 보인다.

오늘의 산행은 나에겐 또 다른 만남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 날이기도 하다.

10여년만에 만나는 "시간여행"님을 만난다는 반가움이 내 마음을 설레게한다.

드디어 그사람을 만났다.

예전보단 더 젊어진듯 더 잘 생긴듯 내가 생각했던것 보단 훨씬 더 핸섬한 모습이다.

나만 더 나이를 먹고 늙어 버렸나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속을 띵하고 강타하는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등산을 하면서 짬짬히 나누기로 하면서

달리는 버스 의자 깊숙히 허리를 붙이고 창밖을 내다본다.

산도 가고 나무도 가고 논과 밭의 농작물들도 버스를 따라 가고 있는듯 보인다.

가을 풍경들이 창가로 펼쳐지고 그 풍경들을 바라보는 눈가엔 첫사랑의 희미한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하면서 순간 순간 많은 생각들을 되새김질 해본다.

미끄러지듯이 잘 달리던 버스가 가다 말다 멈추기를 여러번 한다.

추석전에 벌초하는 성묘객들의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워서 급기야 도로가 정체가 되고 있는것이다.

오늘의 산행지는 충북 보은의 구병산이라서 좀 거리가 먼곳인데 밀리는 정체 구간 때문에 좀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그 걱정은 잠시일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로는 뻥 뚫리고 버스는 물찬 제비처럼 잘도 달려간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구병산을 바라보니 뭉게구름들이 새파란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서 보기 좋은 모습을 연출한다.


가을이다.

그래 이젠 완연한 가을이 찾아온거야...

옷깃을 스치는 바람도 이젠 시원한게 아니고 조금은 차갑게 느껴진다.

얼마전만 해도 무더위에 지쳐서 언제 가을이 오나 했는데 그 가을이 눈앞에 다가온것이다.

산꾼들이 등산 하기엔 딱 좋은 계절이 찾아 온게 분명하다.

발걸음도 가볍게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굽이진 세멘트 포장길 모퉁이를 지나고 논둑과 밭둑길을 지나기도 한다.

지난 여름 그 혹독한 더위를 이겨낸 농작물들이 탐스럽게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는 모습들이 농부들의 마음엔

풍요와 많은 위안 될것 같아보인다.

아직은 덜 여문 들깨 열매들이 알알이 익어가고 노르스럼하게 물드는 감나무의 감들도 수즙은듯 잎사귀에 숨어있다.

가을 햇볕을 받아서 짙은 초록색 빛깔로 자라는 배추와 무우들의 채소들도 싱그럽게만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고 드디어 등산 초입길에 들어서는데 가파른 등산로가 험로를 예상케한다.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가픈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등줄기와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오르다가 쉬어야지 하면서 힘든걸 참으면서 오르고 또 오르기를 한참을 오르다보니

함께 했던 일행들은 뒷서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나혼자만 홀로 오르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산꾼들의 일행들이 좁은 등산로를 가득 메워지고 추월하기도 어렵지만

가까스로 추월하고 여러번 추월해서 그 일행들을 따돌리니 내 앞쪽에는 나혼자만 산에 온듯 적막하니 여유러워서 좋기만 하다.

키큰 나무를 휘감고 올라간 다래 넝쿨을 흔드니 잘 익은 다래가 나 잡아 먹으란 듯이 마구 마구 쏟아져 내린다.

손끝에 잡히는 다래의 감촉이 물컹하게 아주 잘 익었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다래향과 맛이 아주 좋다.

지나던 사람들도 다래 주워 먹기에 여념이 없고 난 또 산을 오른다.

구병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가파른 바윗길에 바위들이 한결이 뾰족 뾰족한게 송곳처럼 날카롭기만 하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아래 풍경들이 가을 햇빛에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적암휴게소에 정차한 우리가 타고온 버스도 보이고 보은 위성지구국의 커다란 접시 안테나도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을 올라올땐 여럿이 올라왔는데 다들 어디로 갔는지 아심의 님들은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잠시 기다리면 누군가 오겠지 했는데 기다림은 허사가되고 만다.

방향을 풍혈쪽으로 돌려서 내려간다.

지난번에 구병산에 왔을땐 날씨가 좋지를 않아서 풍혈 구경을 못했는데 오늘은 그길로 가고 있다.

여러곳에 풍혈이 나온 자리를 작은 돌로 둥굴게 흔적을 만들어 두었는데 풍혈이 나오는 구멍엔 아무런 온기도 냉기도 없어서 풍혈이 맞긴 맞나 할정도로 의아하기만 하다.

배꼽시계가 밥 먹을 시간이 되였다고 꼬르륵 소릴 낸다.

혼자 앉아서 밥 먹기가 왠지 청승 맞아 보일것 같아서 부지런히 걸어서 걷다보면

아심의 일행들을 만날수있을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발걸을 재촉해본다.

한참을 걷다보니 일행들을 만났다.

일행들도 방금 모여서 싸온 도시락을 풀고 있는것이다.

"형님 이리로와서 여기 앉으세요"

시간여행님이 반가히 날 반겨준다.

쭉 펼쳐 놓은 반찬들이 너무 다양하기만 하다.

돼지고기 뽁음에 강원도에 가서 직접 채취해왔다는 산나물과 내 입맛을 자극하는

온갖 반찬들이 식욕을 자극시킨다.

내가 가져온 반찬은 연뿌리 조림과 마늘쫑 장아찌가 전부인데...

또 다른 바로 옆자리엔 생고기를 구워서 같이 먹으라고 나누어 준다.

이 좋은 반찬에 술이 빠지면 섭섭해할까봐 시원이도 한잔 받고 담근 인삼주도 한잔 받고 또 권해보기도 하면서

점심 식사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잠시 사방 팔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속리산도 보이고 첩첩 산중의 모습들이 켜켜이 겹쳐 보인다.

어딜 바라보아도 우리의 산하는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이다.

그 산아래 아련히 보이는 몇몇채 또는 단독으로 지어진 가옥들이 외로운 섬들처럼 다가온다.

카메라 셧터를 여러번 누르기를 반복하다보면 내맘에 드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전혀 볼품없는 그림도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오늘의 구병산은 바위산이라서 볼것도 많고 좋은 그림을 담아 갈것도 제법 많기만하다.

간간히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들도 서서히 가을 풍경속에서 예쁜 모습을 한껏 뽐내기 시작한다.

물론 바위산은 그에 비해서 위험하고 힘들고 걷기도 어렵고 가파른 계단길에 때로는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는

구간들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의 힘든 구간이 많을수록 등산하는 즐거움은 커지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산을 오르는 길이 가팔렀는데 하산길의 내리막길도 순탄치만은 않은 급경사길이다.

얼마나 내려왔는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물가에 모여앉아서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심의 회장님과 여총무님 그리고 일행들의 몇분이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다.

꼭꼭 챙겨 묶은 신발끈을 풀고 물속에 발을 담근다.

오늘 내내 고생한 발이 시원한 물속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있는것이다.

울 회장님이 쐬주 한잔 하라면서 한잔 권하는데 기다렸다는듯이 한잔 덥썩 받아 마시곤 이내 한잔 더 받아서 두잔을 연거푸 마신다.

잘 익은 포도와 찐한 사과향의 달콤한 사과가 쐬주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방금 부근에서 따왔다는 어름 열매를 난 얘기만 들었지 오늘 난생 처음으로 보았다.

마치 작은 바나나 모양의 어름 열매 그맛은 어떨까 맛을 보았는데 별로 맛있는건 모르겠고

 몸에 좋은 열매일꺼 같다는 생각은 드는 느낌이 든다.


오늘의 하산주는 선산에 있는 버섯 전골의 메뉴로 정해졌는가보다.

"형님 이리로 오세요"

김면배님이 늦게 들어오는 나를 향하여 손짓한다.

아심엔 다정 다감한 분들이 많아서 좋고 나를 형님으로 불러주는 동생 아닌 아우님들이 있어서 더욱 좋다.

손수 버섯 전골을 가득 퍼 담아서 나에게 먹으라고 건네 주는 아우님의 자그마한 정성이 고맙기만 하다.

너도 한잔...

나도 한잔...

주고 받는 술잔속에 아심의 님들과 정은 깊어지고 낯설음도 어색함도 이젠 많이 사그러 들었다.

때 맞추어서 회장님의 건배가 이어지고 잠시후엔 여총무님의 한잔술이 권해지는데

술은 권하는 맛에 마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다리 힘있을때 부지런히 산에 다니고 술마실 체력이 될때 술도 마시는거지 안 그런가요?

연거푸 여러잔을 들이켰더니 철부지 소년의 앳된 얼굴처럼 발그스럼하게 물들고 취기도 오른다.

적당히 취하고 기분도 좋기만 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하산주에 술이 없다면 무슨 재미와 즐거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술이 있어서 좋고 같이 마실 누군가 있어서 좋은 하루다.

버스에 올라서 잠시후 회장님이 내 옆에 와서 술 한잔 더 할려면 뒷좌석으로 가보라고 한다.

허걱~~

진짜 술꾼들은 여기에 다 모인거 같으다.

그렇다면 우리 여총무님도 술꾼인감?

아마도 주량이 나보다는 한수 위가 아닌가 싶어보인다.

연신 술잔을 마시고 돌리고 권하고 눈깜짝할 사이에 게눈 감추듯 여러잔의 쐬주를

입안에 쏟아 붓듯이 비워버린다.

누군가 준비해온 삭힌 홍어 안주를 연신손으로 집어서 입안으로 밀어 넣어주는(누군지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아줌씨)바람에 

홍어맛은 씹히는 질감도 좋고 쐬주도 주량을 오버해서 더 많이 마셔버린듯하다.

하산주 마신술이 한참 취기가 오르는데 더 마시다간 안되겠다 싶어서

슬그머니 꽁지를 내린듯이 뒷좌석을 벗어나서 내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뭐든지 과하면 독이되고 적당히 즐기면 즐거움이 오래 가는 법이다.

오늘의 산행은 날씨도 좋았고 분위기도 아주 만족할만한 즐거운 시간이였다.


가을...

이 가을이 다가기전에 좀 더 많이 산을 올라야지.

욕심 내지 않고 더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산을 찾아야지.

조만간 오색 단풍이 산하를 물들이고 은빛 억세꽃이 바람결에 일렁일때

가을산을 찾는 나도 가을 빛깔이 되여서 가을 향기를 남기고 싶다.

그래서 나도 진정한 秋男으로 변신하고 싶다.

내가 남긴 헤아릴수도 없이 남긴 수많은 발자욱 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과 사연들을 올 가을엔 더 많이 남기고 싶다.

나혼자 보다는 아심의 님들과 함께라면 더 재미있고 즐거움이 넘치는 그런 산행이 되지 않을까?


*삽입곡은 백영규의 "슬픈 계절에 만나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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